12월이면 생각나는 영화
1989년 세상에 빛을 보았다가 지난 2016년 연말을 맞이하여 재개봉했던 로맨스 영화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해마다, 연말이 되면 <나홀로 집에> 만큼이나 내 머릿속을 휘젓는 영화 중 하나다. '맥 라이언'의 리즈 시절을 보는 재미는 물론,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이자 매력은 그 당시의 뉴욕을, 1980년대 말의 뉴욕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거칠면서도 그때의 감성이 묻어나는 필름 속 색감이 거의 미칠 지경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날로그를 굉장히 좋아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지는 않는데 매년 12월이 될 때면 잊지 않고 먼저 생각나는 영화라고 할까? 물론 <나홀로 집에> 세대인 건 맞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의 12월은 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는 영화가 먼저였다. 어렸을 때 비디오로 빌려봤던 기억, 그리고 토요명화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봤던 기억이 어려품이 있지만 사실상 영화가 재밌는지는 기억에 없는 그런 작품이다. 그저 유명한 영화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 그리고 2016년, 한참 영화리뷰어로 활동하고 있을 때라 운이 좋게도 영화사를 통해 시사회 초대를 받았었고 그렇게 처음으로 이 명작을 영화관에서 볼 수가 있었다. 제대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로맨스 영화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보는 내내 두 배우에게 몰입되는 건 물론, 영화 속 배경에도 심취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기억이 나는 명장면이라고 할까? 나만의 최애 장면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필요한 나무를 끌고 가는 장면. 그리고 해리와 샐리가 패스트푸드점이었나? 음식점에서 샐리가 신음소리를 내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샐리의 신음소리가 끝난 뒤에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아주머니가 점원에게 건네는 말 때문이다. "저 여자가 주문한 음식 주세요" 라는 대사. 대사도 압권이었지만 그 당시의 음식점을 구경할 수가 있어서 더 좋았다. 나는 항상 이런 명작, 어느 새 고전이 되어버린 이런 영화를 볼 때면 "영화 속 저 음식점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을까?" 라고 생에 잠기곤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최근 들어 두 번 정도 다시 보게 되었다. 역시 영화는 두 번 볼때, 세 번 볼때,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 다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볼때마다 다른 느낌이어서 때로는 전혀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면서 더더욱 알 수 있었던 건 역시 남자와 여자라는 동물은 다르다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대화나 감정 말이다. 영화가 좋은 건 여기서 또 작용하는데 여자에 대해 미처 몰랐던 남자들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고 남자에 대해 미처 몰랐던 여자들은 조금이나마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월의 드라마를 닮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역시 '맥 라이언'의 저 사자머리와 푸른 호수를 닮은 두 눈을 보는 재미가 있다. 보면서 감탄의 연속은 물론, '맥 라이언'이 아니었다면 어떤 여배우가 샐리를 연기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 그저 멍하니 보게 만든다. 스틸컷에 나오는 저 유선 전화기도 그저 너무 감성적이다. '맥 라이언'의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티포트나 액자도 1980년대의 미국 감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해리는 굉장히 나쁜 놈이다. 바람둥이도 이런 바람둥이가 없을 정도. 처음 보는 여자를 대하는 태도도 이렇게나 무례할 수가 없다. 해리 말로는 본능이라고 하는데 본능도 본능 나름이지, 처음 보는 여자들에게 그런 본능을 대놓고 표현하는 건 사실 돌아이가 아닐까 싶다. 이런 게 미국 스타일인가? 하고 웃어 넘길 수도 있을 거 같기는 한데 미국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결국 인연은 있기 마련이다. 해리와 샐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썸아닌 썸을 타기도 했고 때로는 극혐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끝내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결말을 보게 되면 역시 인연은 인연인가보다. 그렇게 싸우고 지지고 볶아도 희한하게 그 사람이 생각나기도 하니까. 가끔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는 이 영화가 리메이크되기를 바라기도 하는데 곰곰히 다시 생각을 해보면 리메이크가 되지 않았으면 하기도 한다. 차라리 재개봉이 낫지. 어땠든 이 영화는 <나홀로 집에>만큼이나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가 되면 항상 내 머릿속을 휘젓는 영화 1순위인 작품이다. 아날로그는 과거형이 되었지만 사랑은 늘 현재진행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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